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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나에게 일어난 11가지 일들 :: 2012/01/08 16:02

05년부터 주욱 연례행사처럼 이어오고 있는 주제글쓰기. 올 해엔 깜빡할 뻔 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누군가의 포스팅을 보다 순간 떠올라 후다닥 글쓰기 창을 열었다.


01. 두 나라에서 생에 첫 독립생활을 경험하다
 

대학원을 가야겠다고, 그 이전에 워킹홀리데이를 다녀오겠다고 결심하고 회사생활을 정리할 때 나는 이후 생활에 대한 나름의 원칙을 세웠다. 바로 얼마나 비용이 들든 얼마나 힘들고 어렵든 모두 내가 온전히 감당하겠다는 것. 그래서 시작한 게 생활터전의 독립이였다. 우여곡절 끝에 좁지만 아늑한 집을 구해서 두달 여 가량 학교 어학원과 번갈아 오가며 지냈다. 사실 지금이니까 '좁지만 아늑한'이라는 낭만적인 표현이 나오지, 그 곳은 집이라기 보단 닭장에 가까운 고시텔이였다. 춥디 추운 한 겨울, 밤마다 불을 끄고 침대 위에 누워있으면 과연 내가 잘 하는 짓일까 그냥 이 악물고 적당히 회사다니다 적당히 결혼이나 하고 살까 이런 생각에 숨이 턱턱 막혀 제대로 잠을 청할 수 조차 없어 뜬눈으로 밤을 새다 슬리퍼를 질질 끌고 바로 앞 남자친구네 집으로 향하곤 했었다. 그 후 건너 온 호주. 한 주 먹고 살기 위해 한 주를 일 하며 삼시 세 끼를 꼬박 스스로 만들어 먹으면서 낯선 나라에서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는 불안한 마음을 달래려 얼마나 애썼던가. 그 긴긴 불안함의 터널은, 마음이 잘 통하는 사람들과 하나 둘 서로를 알아보고 다가가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레 통과할 수 있었다. 어느 순간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지니 그 동안 눈치채지 못했던 삶의 주변부적인 것들의 소소한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어느새 나는 마치 처음부터 이 곳의 일부였던 것 처럼 그렇게 스며들어 갔다. 지금의 나는 두 번째 터전 생활을 슬슬 정리하고 세 번째 시작을 차근차근 달팽이처럼 느리지만 겨울을 대비하는 개미마냥 부지런히 준비하고 있다. 아직도 어려운 것들 투성이지만, '삶'이란 것이 무엇을 뼈대로 기초하여 무엇을 동력으로 더불어 굴러가는 것인지 아주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래서 이제는 전혀 새로운 곳에 가도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이러다 덜컥 해외에 정착하게 될 지도 모를 노릇이다.

02. 호주로 생의 터전을 옮겨오다

첫번째와 조금은 겹치는 내용이기도 하지만, 엄연히 다른 의미가 있으니 따로 분류. 여행은 좋아하고 또 자주 했어도 한 곳에 진득히 눌러앉아 여행자가 아닌 생활인으로 살아본 건 이번이 처음. 게다가 그 지역또한 부담없는 가격과 거리감 적은 문화차이 등으로 늘상 드나들었던 아시아권이 아닌 미국과 유럽의 중간쯤 되는 위치에 걸쳐져 있는(개인적인 견해로 호주는 역사적 기반이나 언어적 측면에 있어선 확실히 영국을 위시한 유럽쪽이지만 이민자의 나라인 탓에 풍기는 다문화성이라든지 사회분위기와 가치관 등은 미국쪽에 가깝게 여겨진다) 나라, 호주라니. 이민자의 나라에서 살아보니 막연하게 여겨졌던 세계화라든지 신자유주의, 개인주의 등을 아주 선명하고 생생하게 인식할 수 있게 됐다. 이 사회의 숙제는 그 때부터 지금까지 늘 '다양성을 유지하되 그 가운데 보편적 가치를 이끌어 내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런 키워드를 본의 아니게 온몸으로 고민하게 되면서 나 자신과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고유성을 보다 객관적으로 들여다 볼 수 있게 됐다. 다른 것은 다 차치하고 확실한 것 하나는, 이미 결혼이민 등으로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무색해질 만큼 다민족 국가로 변해버렸음에도 그 다양성을 '별종'으로 취급하며 객관기준으로부터 철저히 배재하려는 한국사회의 보수성은 머지않아 스스로 목을 졸라 숨을 옥죄는 사회적 장애물로 작동하게 될 것이라는 게다. 그 사회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그리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역할을 이따금 떠올려 보기도 하는데, 글쎄, 어떻게 될런지는 잘 모르겠다.

03. 외국인 노동자로 육체 노동을 경험하다

내가 이 곳에서 경험한 두 가지 일은 모두 호주의 대표 산업인 육가공업의 공장에서 수출역군-_-으로 노동하는 것이였다. 이게 참 아이러니한게, 호주를 대표하는 산업의 현장을 들여다보면 막상 진짜(? 라고 하기도 애매하지만) 호주인보다는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노동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이 땀흘려 떠받치고 있는 게, 바로 오늘날의 복지국가 호주사회인 게다. 당연히 대접받아 마땅할 이들에게 호주정부는 어떻게든 기를 쓰고 혜택을 덜 주려고 요리조리 머리를 굴리고 있으니 아이러니하다고 표현할 수 밖엔.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워낙 복지 수준이 높다보니 공장 노동자로 일 하고 살아도 한국에서 속칭 '화이트 칼라'로 살 때보다도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 일까. 이런 걸 보면, 자국에서 석사 박사 받고 한국 와서 공장일 하는 동남아 노동자들 심정이 이렇겠구나 싶다. 또 이런 생각을 하다보면 과연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위해 누려야 할 기본적인 가치들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에 닿게 된다. 아마도 소속 사회에서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지 않을 만큼 해당 사회의 구성원이자 온전한 개인으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전달 해 주는 가치들일텐데. 고도로 발달된 사회와 그렇지 않은 사회의 차이라면 얼마나 다양한 종류의 가치를 보장해 주는가 아니면 결국 금전 하나로 수렴하는가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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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6. 그냥 혼자 좋아서, :: 2011/10/20 19:19

소소하게 나 혼자 살짝 기분 좋지만 딱히 말하고 다닐만한 게 아닌 뭐 그런 것이니까 일기는 일기장에.. (...)

오늘 쉬는 시간에 만난 영국애랑 첨으로 대화나누는데, 문득 그 아이가 묻는거다. 야 너 어디서 왔어? 한국인데 왜? 지져스 야 너 온지 얼마나 됐는데? 여기 살아? 호주 온지는 7달쯤 됐고 맥카이 온지는 1달 됐는데 왜? 지져스 너 니 발음 어떤 줄 알아? 넌 한국인 악센트가 없어. 무슨 의미야? 너 영어 대체 어떻게 배웠길래 영국인 같냐고 나 영국애랑 얘기하는 줄 알았어.

여기로 옮겨와서 다섯번 이상 들은 이야기 - 너 영어 정말 잘한다. 그니까, 유창하다는게 아니고, 발음에 한국인 억양이 없어서 귀에 걸리는 게 없다고. 처음엔 회사 면접때, 두번째엔 인덕션때 동기들한테(영어선생님 하다 온 줄 알았다고!), 다음엔 일본인 친구한테, R한테, 점심시간에 옆에 앉는 호주애한테, 그리고 오늘 영국남자애들한테.

R이 그랬다. 우리가 같이 어울리는 걸 보고 남자들이 저 한국애 영어는 좀 하냐고 종종 묻는다고. 그럴때마다 R은 '얘 미국애야 한국애가 아니야 너 얘기 나눠보면 깜짝 놀랄걸'이라고 한다 그랬다. 그리고 내 꿈에 대해 이야기 했을 때 R이 그랬다. 넌 영어를 잘하는 아시안이라는 굉장한 매리트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어딜 가도 공부하고 정착해 살 수 있을거라고. 그런 얘기 들을 때 마다, 손발이 약간 오그라들면서 뭔가 이 기대(?)에 못미치지 않기 위해 더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드는거지..

첨엔 일끝내고 캠브리지 코스 들어야지 싶었는데 지금은 아이엘츠 쪽으로 맘이 많이 기운 상태다. 혹시나, 혹시나, R말마따나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 공부하게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최근 많이 들어서다. 하지만 그럴려면 석사나 박사가 아닌 학사부터 떼야 할 터. 내 학사가 이쪽분야가 아닌터라 여기서 바로 석사 들어가긴 어려울 거 같더라.. 사회경험 쌓을 것 까지 생각하면 심리보단 사회복지 쪽이 더 합리적이고..

반복되는 질문이지만, 어쩌다가 난 여기까지 와서 이런 생각을 하며 이렇게 살게 됐을까. 사람 앞날이란 참, 아무도, 당사자조차 알 수 없는 거로구나....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007. 브리즈번 무료 영어교실에 나가다 :: 2011/04/02 20:10

호주에 온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았는데 벌써 챗바퀴같은 일상이 고정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주중엔 새벽같이 일어나 오후까지 일한다음 들어와 씻고 저녁먹고 영어공부하다 자기. 주말엔 나름 특별한 걸 해 보겠다고 하는게 토요일엔 브리즈번 맛집탐방, 일요일엔 장봐와서 스페셜 홈메이드 쿠킹 및 주중 도시락반찬 만들기. 뭐 나름 다 의미있고 좋은 일상이긴 한데 최근들어 내가 너무 사회와 단절되어 사는 건 아닌가 고민하게 됐다. 이렇게 사는 건 사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였거늘. 미친 척 하고 하고싶은 것을 찾아하며 살아도 무방할 법한 타국에서 이런식으로 '바른 길'만 걷는다는 건 너무 재미없잖아. 무엇보다 사실 내겐 친구가 필요한 상황이다. 암만 회사라는 창구를 통해 사회생활을 한다 해도 사람 만나는 데엔 한계가 있기 때문.

그래서 오늘, 주말 무료 영어교실에 공부하러 나갔다. 무료 영어교실은 주로 교회에서 봉사와 선교를 목적으로 진행되는 것인데, 성경공부랑 예배 같은 부분은 강제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유도리있게만 이용하면 비슷한 처지(?)의 다국적 친구들도 많이 만나고 영어공부도 할 수 있어 나름 괜찮단다. 내가 간 곳은 브리즈번 시티에서 살짝 떨어진 곳에 있었는데 지리를 잘 몰라-_- 거의 한시간 가량 지각하고 말았다. 한참 헤매다보니 슬슬 귀찮아져서 그냥 시티 도서관에나 갈까 싶기도 했지만 늦더라도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싶어서 꾸역꾸역 찾아갔다 -.-;;

어렵사리 도착해 교실 안으로 들어가니 다행히도 쉬는시간이라 살짝 끼어들어가서;; 바로 수업시작. 간단히 인사나누고 'picnic'을 주제로 토론했다. 종이 나눠주고 피크닉에 필요한 준비물 적어본 다음 30초 동안 준비물 누가누가 빨리외우나 게임도 하고-.- 옆 친구들이랑 각자 자기네 나라 피크닉 문화에 대해 토론해보고, 마지막으론 팀을 나눠 스피드 퀴즈까지;; 뭔가 이런 활동이 오랜만인지라 나름 재미있더라. 한국애들이 월등히 많긴 했지만 대만, 일본,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고만고만(...)한 친구들이 모이니 얘깃거리도 많이 나오고. 나처럼 백팩이라든지 외국인쉐어에 살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런 분위기 맛보기 쉽지 않은데 딱 좋더라. 나오면서 몇 명이랑은 연락처도 주고받고, 시티에서 주중에 하는 영어교실도 괜찮다고 나오라고들 하길래 거기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 

끝나고 언니 만나 밥 먹고 장보고 들어왔다가 집에서 steph 만나 오늘 있었던 일들을 얘기나누게 됐는데, 이단교(cult 라는 단어로 표현하더라)인지 아닌지 확인하겠다며 어디 간거냐고 묻는거라. 자기가 호주 엄마라며..ㅎㅎ 이름 보여줬더니 확인하고는 baptist 라면 안심이라고 했다. 나중에 구글링 해 보니 이게 침례교였다. 시티 나가보면 노란 옷 차려입고 거리에서 시끄럽게 찬송하면서 사람들 끌어모으는 애들 있는데 그런 애들은 이단일 수도 있다고. 그 말을 듣고보니 우리나라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싶은 것이 -.-.. 고개가 끄덕여지더라.

아 오늘 이렇게, 또 하나의 커뮤니티를 만났다 :) 앞으로 별 일이 없으면 토요일 수업은 매번 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