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 불시착기'에 해당되는 글 28건
- 028. 다시 만났네 | 2012/04/08
- 027. 이제는 익숙한 | 2012/03/10
- 026. 나는 알지 | 2012/02/17
- 025. 먼 길 오래 돌아와, 우리, 지금 여기, 이렇게 :) | 2012/02/09
- 024. 웃으며 안녕 | 2012/01/19
- 023. 생활의 발견 | 2012/01/11
- 022. 고것 좀 일 했다고 | 2012/01/10
- 021. 이해가 안 되는 것 하나 | 2012/01/04
- 020. 크리스마스 홀리데이 단상 | 2012/01/02
- 019. I do love myself | 2011/12/15
028. 다시 만났네 :: 2012/04/08 15:02
이사 왔다. 용케 집 잘 구해서, 잘 옮겨왔다. 시티 근처고, 방값도 저렴하고, 일터랑도 도보 3분 걸리나. 호주생활 1년 넘어만에 드디어 한인 쉐어로. 처음 와서 일주일에 두어번씩도 삼겹살을 구워먹는 게 너무 새롭기도 하고 감격적이기도 해서 어리둥절하기 까지 했다. 지금은 너무 잘 먹어서 큰일. 사람들이랑 어울리다보니 느는 건 밥이요 술이네. 좀 적당히 먹어야 하는데 어째야 할지 원.
그나저나. 사람이 참 그래서, 외국인들이랑이라면 서로에 대해 속속들이 알기 어려워 적당히 이해가지 않는 부분도 그러려니 하고 둥글게 지낼법도 한데 한국사람들 끼리 살다 보니 알게 모르게 신경써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이를테면 이 집의 주인은 3~40대의 결혼한 한인부부인데, 아이는 없고 쉐어생들이랑 같이 밥 지어먹고 저녁때 오손도손 둘러앉아 얘기하는 분위기를 좋아한다. 이제 첫비자때 만난 친구들 하나 둘 다 돌아가고 그리 많지 않는 친구들만 남은 상태에서 이렇게 정기적으로 만나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이 바로 곁에 있다는 건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친구들'이였지만 이 사람들은 '같이 사는 사람들'인 것이다. 즉 서로의 성격에 맞춰 친구로 지낼지 말지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원치 않게 상대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아무래도 주인집 분들은 5년 넘게 쉐어생만 100명 넘게 받아본지라 이런저런 사람들에 적응이 되었을 뿐 아니라 연세가 있으시다보니 딱히 분위기를 엄청나게 강요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문제는 같이 쉐어해 사는 쉐어생들.
나랑 같이 지내고 있는 사람들은 나 포함 총 다섯인데, 둘은 주인부부에 하나는 내 또래 남자애고 남은 하나는 나보다 한주 뒤에 들어온 여기서 대학다니는 스물한두살 짜리 여자애다. 내 또래 애는 사회생활도 오래하고 직업 자체도 영업직을 했었다보니 어떤 식으로 둥글게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너무 잘 아는 스타일. 남들 마다할 일도 솔선수범하고 같이 사는 쉐어생들이 다 여자니까 자기가 총대메고 청소며 설거지며 심지어 자금사정도 딱히 좋지 않는 거 잘 아는데 자기 돈 털어가며 밥 지어서 사람들 먹이고 그런다. 집안 어르신들 비위도 너무 잘 맞춰가며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하고.
하지만 이 여자애, 강적이다. 이 친구의 첫날, 외출했다 들어온 나는 방문을 두드려 인사를 건냈는데 대뜸 여기서 뭐하면서 사냐 묻는다. 어 요즘은 하우스키핑 일하는데. 학생이시라면서요? 말이 끝나자 나를 아래위로 쭉 훑어보더니 말한다. 아 예 딱 하우스키핑 하게 생기셨네요. 엉 이건 무슨 소리? 살짝 곱씹어보다 별로 도움될 것 같지 않아 관뒀다. 그 후 며칠 뒤 다 같이 둘러앉아 사는 얘기를 나눴다. 같이 사는 남자애랑 둘이서 거실에서 술 먹으며 사는 얘기 하고 있는데 이 아이가 자연스레 끼어들기에 말을 건네봤다. 넌 뭐 좋아하니. 아 저는 파티랑 클럽이요. 놀려먼 제대로 놀아야죠? 아니 어리고 귀여운데 남자친구 안 사귀고 파티만 다니면 어째? 뭔가 같잖다는 듯한 미소가 슬몃 스치더니 말한다. 저 호주 온지 3주 됐는데 그 동안 고백만 4명한테 받은 거 아세요? 근데 뭐 전 아직 즐기는 삶이 좋아서요. 구속되는게 싫네요. 아 이런 특유의 20대 초반 반항끼 어린 말투와 경멸에 찬 당돌한 표정이라니. 살짝 웃음이 났다. 이런 이야기 들을 하고 있는데, 내 남자친구 얘기가 나왔다. 애가 묻는다. 남자친구 어디있어요? 한국에? 응 아니 자기네 나라에 있지. 곧 다시 올거야. 순간 미묘하게 내 얼굴을 한 번 보더니 말한다. 아 뭐 브라질애 정도 되나보죠? 참고로 여기서 '브라질 애'라는 의미는 호주에서 좀 파티 해보고 이렇게 저렇게 어울려본 사람이라면 상식과도 같이 '치마만 두르면 한 번 자보고 싶어서 만난지 10분만에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브라질 남자들'는 인식을 깔고 있다. 하하. 귀엽네. 옆에 남자애가 거든다. 아냐 얘 남자친구 유럽애야. 퀄리티 있어. 여자애 표정이 약간 일그러진다. 어머 얘 뭐니??
그러다 마침내 사건(?)이 터졌다. 나도 새로 들어왔고 이 여자애도 새로 들어온 김에 가족들 끼리 같이 저녁 먹기로 한 날. 실컷 밥 먹고 나니 급 분위기를 타서 같이 포켓볼을 치러 가기로 한 것. 마침 주인 부부가 연애하면서 자주 다니던 펍에 당구대가 있다길래 같이 가서 술도 시키고 게임을 좀 해 볼까 했다. 그런데 우리 옆 테이블에 혼자 와서 흠뻑 취한 남자가 우리가 게임하는 걸 보면서 혀꼬인 목소리로 훈수를 두기 시작하더니, 이내 주머니 동전들을 짤랑거리며 다가와서는 자기도 끼워달라는 거다. 딱 봐도 취한 사람이라 우리는 별로 상대할 가치를 못 느꼈다. 가족들이 한국말로 중얼거리며 취한 애 말상대도 안 해주니 이 여자애 적극 나선다. 야 미안한데 우리 너랑 같이 못 놀것 같아. 이 사람들 영어 진짜 못하거든? 너랑 같이 놀면 얼마나 맘이 불편하겠니? 니가 좀 이해를 해 줘. 푸하하하하하..... 너무 웃겨서 내 정말. 아무리 속삭이듯 말했어도 내가 귀가 없지 않은 이상 다 들리는데, 이게 무슨 개뼉다구 같은 소리래. 자기만 학생이다보니 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만, 이런 식의 태도는 정말 아니지 않나. 이 여자애에 대한 인식이 확실히 굳어진 게 바로 이때였다. 그날 밤 남자친구와의 전화통화시간 이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남자친구가 말한다. 야 이 여자애 baby G잖아! 오마이갓. G. 우리가 같이 잉햄에서 일 하던 시절 그렇게 무수한 일화를 남겼던 그 G, 일명 강남병.
여기 살다보면 아주 간혹 이런 캐릭터를 만나게 된다. 나는 한국에서도 중간밖에 못 가던 어중이떠중이 같은 니네랑은 격이 달라요- 라고 온몸으로 말하고 싶어하는 캐릭터. G가 딱 그랬다. 이 캐릭터의 특징으로는 1. 집이 부유하며 2. 덕분에 영어를 이미 익히고 와서 굉장히 수준급이며 3. 해외경험이 처음이 아니고 4. 돈아끼려고 요리해먹고 집안일 다 살뜰히 하면서 악착같이 일하는 애들을 같잖게 여기며(공부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 자기가 사서 만드니까 영어가 그렇게 안 느는 거라고 생각하며, '공부에만 집중하느라 가사같은 하잖은 것엔 신경쓸 겨를이 없다고 여기는 자신이 고결하다'고 믿는다) 5. 자기보다 배경이며 영어며 한참 없어 보이는 데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람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어떻게든 깎아 내리려고 하고 6. 주변사람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 생각없이 하는 행동과 말로 사람들을 다치게 만든다. 얘에 대한 에피소드는 백만개쯤 되지만 여기다 다 일일히 쓰긴 뭐하고. 하여간 이 친구 아주 유명했다.
그러고보니 그렇네. 이 친구 완전 판박이로구만! (듣기만 해도 바로 알아차리는 내 남자친구도 완전 대단!) 주인 어른들은 띠동갑도 넘게 나이차이가 나는 애다 보니, 같이 사는 남자애도 그냥 어린 여자애라고 생각하는지 하는 게 귀엽게 보이는 모양. 나는 좀 웃겨 보이는 데, 혼자 웃기는 건 아무래도 상관 없으나 사람 맘 불편하게는 좀 안 했으면 싶은 바람이 있네. 방금도 주방에서 나 설거지 하고 있는데 잠깐 물 받아갈 생각인지 말 한 마디 없이 수도꼭지를 자기쪽으로 홱 틀어 쓰는 바람에 약간 열이 받았다. 내가 손윗사람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어서가 아니더라도 그건 좀 아니지 않나. 매사 약간 이런식이다. 주변사람에 대한 배려 부족. 은근하게 자기가 우월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는 느낌이, 사소한 것에서부터 풍겨나 기분을 상하게 만든다.
이런 애들이랑은 대체 어떻게 둥글게 잘 지낸담. 남자친구 왈 "그런 애들 하는 짓 그냥 다 코미디잖아. 그냥 웃어". 나도 그러려고 노력중인데 참 쉽지만은 않네. 아 사람 만나는 건 평생을 해봐도 어렵고 또 어렵다. 하하.
027. 이제는 익숙한 :: 2012/03/10 16:22
기다림.
호주에서 이방인으로 생활하기 위해 빨리 익숙해져야 할 부분중의 하나는, 바로 기다림이다. 기반이 하나도 없는 곳에서 일이든 집이든 친구든, 하여간 뭐든지 만들어 가기 위해선 기다리는게 필수다. 혼자 동동대며 발 굴러봐도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다. 그저, 허허, 뭐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딱 맞아 떨어지는 뭔가가 나타나기 전까지 그저 여유롭게 기다릴 줄 알면 된다.
오자마자 잡았던 일자리에서 이런저런 잡음이 생겨 열흘만에 관뒀다. 쉐어하우스에 살지 않는 나는 주로 일터에서 사람들을 만나왔는데, 이번 일자리는 사람 사귈만한 곳도, 심신이 편할만 한 곳도 아니였다. 그런저런 조건들을 따져가며 일 하는 건 사치 아니냐고 묻는다면 이제 그럴 조급함이 가셔서 언제고 마땅한 것을 기다릴 준비가 되어있기 때문이라고 답하고 싶다. 모아둔 돈도 적잖고, 이번 일로 천불 모았으면 됐다. 야금야금 쓰면서 다음 일 기다리면 된다. 하고 싶지 않은 상황 어거지로 건뎌내는 건 이미 할 만큼 했다.
참 신기한게, 남자친구와 미래를 약속하고 나서부터 목표가 분명해져서 한치 앞이 내다보이지 않는 상황이 되어도 기다림이 덜 지루해졌다. 우리에겐 장단기 계획이 있으니까. 오는 9월까지, 9월부터 내년 여름까지, 내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그 후부터 2년간, 그리고 그 후.. 할 일이 정해져 있으니까, 괜히 뭘 더 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뭘 빠트리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맘에 조급해 할 이유가 줄어들었다. 그냥 묵묵하게, 해야 할 일을 하면서, 하루하루 나는 중.
일단은 다음일 구하는 게 관건. 지원할 만한 곳이 마땅찮은데, 지원서 일단 넣어두면 한 달 안에는 괜찮은 자리 내 준다는 에이전시 정보를 입수(?)해서 월요일에 에이전시 다녀갈 예정. 뭐 한 달 안엔 뭐가 되어도 될 테니 그 사이사이엔 놀아도 되고, 단기 캐시잡 알바라도 뭐 못 하겠어. 다음 달이면 우리 애기랑 한 달 동안 알콩달콩 놀러다닐 것이고. 서너달만 더 나면, 우리는 우리만의 꿈을 향해 출발.. :)
부디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일이 나타나주었으면 좋겠다. 지금으로선 그게 가장 큰 바람이다.
026. 나는 알지 :: 2012/02/17 21:53
이상하리 만큼 호주에서 일복이 좋았던 나는, 브리즈번에 다시 돌아와서도 첫 면접에 단박에 일자리를 잡았다. 항상 그랬다.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드는 곳에선 꼭 연락이 왔고, 면접을 보면 면접이 곧 채용으로 이어져 나를 안도케 했다. 이번에도 잡 사이트를 뒤적거리다 어쩐지 나를 찾을 것 같다는 곳에 연락을 넣었더니 두어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면접시간을 잡아주었고 지난주 동안 영어시험이다 면접이다 신체검사다 통과하고 나니, 다음주 월요일 인덕션 나오라는 연락이 왔다. 남자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이 내 호주에서의 세번째 면접이였어. 그리고 나, 호주에서의 세번째 일자리를 구했어" 그랬더니 남자친구는 축하하면서도 억울해한다. "넌 내가 잉햄에 가기 전 얼마나 많은 곳에 이력서를 뿌렸는지 알아? 여든이 넘는다고! 심지어 우리나라 맥주 바에서도 나를 안 뽑고 웬 프랑스 남자를 뽑았다고! 날 받아주는 곳은 잉햄밖에 없었다고.. 흑흑"
어제는 오랜만에 브리즈번 초창기 친구 중 하나인 친구 H 커플을 만났다. 내가 시골에 짱박혀 소고기 포장하고 있을 때 그들은 농장지역으로 내려가 체리를 따고 돌아왔다. 장장 4개월, 5개월 만인가?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정말 어제까지 같이 붙어 지냈던 것 처럼 어찌나 좋던지. 그냥 편해서 신기했다. 누군가 내게 말했지. 진짜 친구는, 일년에 연락 한 두번 하고 얼굴 한 두번 볼까말까 해도 만날 때 마다 어제 만난 것 처럼 편하고 모든게 다 통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어제 이네들을 만나고서 새삼 우리가 얼마나 가까웠나 생각하게 됐다. 백년만에 싱가폴 레스토랑 가서 중국식 요리 시켜먹고 서로 근황 얘기하는데, 얘들은 세컨비자 포기하고 한달여 남짓 첫 비자 만료 전까지 브리즈번 인근 여행다니다 다시 본국으로 들어간단다. 왜 그러냐 물으니 여자애네 아버지 환갑잔치 때문이라고. 역시 이 친구들 다운 선택이랄까.. 들어가면 재취업 준비하고 돈 모아서 결혼할거라는데, 만날 주고받았던 농담 레파토리를 다시 건냈다. 둘이서 결혼하는 거 아니면서 청첩장 보내면 가만 두지 않을거라고 ㅋ
밥을 먹고 장소를 옮겨 음료랑 디저트 먹으면서 미래 얘기 하던 중, 내가 남자친구랑 결혼할 걸 염두에 두고 어떤어떤 공부를 해 어떤 삶을 준비할 거라고 얘기했더니 얘들이 살짝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 무슨 문제 있어? 얘들 왈, 나는 사물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사람들이랑 얘기하는 걸 좋아하고 완전 외향적인데 왜 그런 잡을 선택하려고 하냐면서 그러면 틀림없이 우울증 걸릴거라고 다른 잡을 찾으란다. 막 머리를 맞대가며서 내 미래 사업계획을 설계 해 주는데, 그 모습을 보고있자니 두 가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이렇게 내 미래계획을 진지하게 고민해주는 친구들을 이 먼땅 호주에서 만나 함께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가- 하는 것. 두번째는, 그게 정말 내 본 모습인가보구나 싶은 것. 내가 이 친구들에게 만날 하는 농담레퍼토리가 '둘이서 결혼하는 거 아니면 청접장 보내지 마'라면 이 친구들이 나한테 만날 하는 레퍼토리는 '우리 제씨는 얼마나 얌전하고 조용하며 가정적이고 요리를 좋아하며 꽃꽂이도 즐기고~' 하면서 온갖 여성스럽고 차분해 보이는 이미지의 활동들을 계속 생각하면서 갖다 붙이면서 놀리는 거(이거랑 내 웃음소리 따라하기 ㅋㅋ)다.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해도 믿지를 않아! 하긴 우리가 항상 만날 때면, 나는 백미터 앞에서 부터 이름을 부르면서 마구 손 흔들면서 뛰어가고, 그걸 보는 녀석들은 '역시 제씨야'라는 표정으로 깔깔 웃으면서 손 흔들어 주곤 하는 걸. 너무 진지하게 내 성격을 분석 해 주길래(남자애는 자기네 나라 있을 때 HR 파트에서 일 했던 애라 이런거 분석하고 업무적성 파악해 주는게 전공이다!) 남자친구한테도 얘기해봤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아마도 그게 네 진짜 본 모습이 아닐까?" 확실히 그런 면은 편한 사람들 앞에서만 나오고,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있을 때 난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도 잘 알지만. 그런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닌 이들 앞에서는 완전 선생님 스타일(또박또박 바른말만 쓰면서 공손하게, 하지만 적당한 거리감을 둘 수 있게)이 되는 게 나인지라. 나랑 안 친한 사람들은 친한 친구들이 나를 이런식으로 본다는 걸 들으면 기절하겠지 ㅎㅎ
아. 사랑스런 남자친구에, 돈독한 친구들도 곁에 있고, 새로 일자리까지 구한 지금.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는 걸, 나는 잘 알지 :) 하루하루 감사하는 맘으로 즐겁게 지내야지.
025. 먼 길 오래 돌아와, 우리, 지금 여기, 이렇게 :) :: 2012/02/09 20:02
다시 브리즈번에서의 일상 시작. 돌아온 지는.. 아직 채 일주일도 지나지 않았다. 오면 당분간 지지리 할 게 없을 줄 알았는데 은근 하루에 하나씩 이런저런 일들이 생긴다.
돌아와서 이제는 반드시 공부를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유학원에 드나들기 시작했다. 오늘은 심도깊은 상담을 위해 레벨 테스트란걸 봤다. 아옐츠 쪽으로 알아본다 했더니 아옐츠 공부 시작하려면 기본 실력 이상 있어야 한다며 일단 모의고사 보란다. 헉. 유형도 제대로 모르는 시험을 무턱대고 보라니! 투덜대면서 두 시간 살짝 안 되는 시간에 걸쳐 이래저래 치르고 답지를 쓰윽 내밀었는데, 채점결과 준비 안 한 것 치고 나쁘지 않은 upper inter +. 그니까 advance 바로 들어가기엔 쬐끔 모자란데 inter보다는 높은 뭐 그런거. 한 주 정도 워밍업 하면 advance로 건너갈 수 있을 실력이라고. 시험 칠 땐 문법이 은근 쉬운 느낌에 리딩이 너무 어려워서 그냥 감으로 에라 되는대로 풀었는데 웬걸 문법이 가장 낮은 성적에 리딩이랑 스피킹은 평이, 라이팅이랑 리스닝은 만점이였다. 표 받아서 유학원 돌아갔더니 담당자가 보고 바로 아옐츠 치면 못해도 5.5에서 6.0은 나올거라고 12주 6.5~7.0 목표로 해보란다. 6.0이면 영미권이랑 유럽 일반대학 입학기준 넘는 성적. 영주권이 5.0인가 5.5인가. 근데 나는 아카데믹 아옐츠를 해야하니까 좀 더 빡세게 해야하지 않을까 싶은데. 암튼 원래 호주 오기 전 막연하게 잡았던 목표가 1년 내에 아옐츠 6.0 이상 만들기였으니, 공부않고 1년 걸려 이만큼 만들었으면 목표달성은 한 셈인가 싶네 :) 남은 건 아옐츠 학원들 가격 비교인데, 이건 담당자가 이번 주 중에 견적 뽑아서 연락 준다고 했으니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선은 여기까지. 이제 기다리는 것만 남았다.
그리고 세컨 어플라이. 정말 이 놈의 세컨비자.. 이것 때문에 시골에 짱박혀서 고생고생에 악당들이랑 엎치락뒤치락 했던 걸 생각하면 자다가도 피가 거꾸로 솟으려고 한다. 정말 간절히 그냥 별 문제없이 언능 딸칵 나와 주었으면 싶은데, 증빙서류네 엑스레이네 추가자료 요청하면 진짜 짜증 폭발할지도. 이제 신청한지 한 48시간 정도 지났나. 아.. 언능 나와라 언능!
그리고 사람들.
지난번 holiday때 잠깐 블즈번 다니러 왔을 때 친구가 소개시켜 준 인제 막 호주 땅 밟은 꼬꼬마 남자애들 두 마리.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갔고 이제 꼬꼬마 두마리가 졸졸 따라다니며 귀염 부리는데, 가끔 좀 구찮게 굴어도 그냥 마냥 뭐랄까 귀엽게 보인다고 해야하나. 나보다 한참 어린데 내가 귀엽다 귀엽다 하면 우리도 성인이라며 욱하고, 어떻게 하면 학원 여자애들 꼬셔서 재미 좀 볼까 머리 굴리면서 조언 구하는 거 보면 진짜 혀가 차일만큼 귀~엽다. 하하. 현재 이 애기들은 학원도 슬슬 끝나가 이제 일 구하려고 하는 데, 나름 호주도착 일주일만에 출근한 신화-_-를 갖고 있는 내게 이런저런 조언을 구하기 위해 엊그젠 집으로 초대해 밥 해주고 손가락 하나 까딱 못하게 하더라. 나도 어리바리 할 때 알게 모르게 사람들한테 받은 게 많은 고로 앞뒤 많이 안 재고 누나처럼 대해주려고 노력중.
세상 좁다 좁다 하지만 이렇게 좁을 줄 몰랐던게, 엊그제 애기들네 밥 먹으러 가던 중 정말 아주 우연히 고등학교 동창 U를 만났다! 그 친구, 대입에서 원하는 결과 못 얻어 살짝 방황하다 호주로 공부하러 간 것 정도는 알고 있었고, 나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시드니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브리즈번에서만 7~8년째 살고 있다더라! 그 친구는 남자친구랑, 나는 애기 한 마리랑 같이 있어서 그냥 연락처만 주고받고 헤어졌는데, 나중에 문자온 거 보니까 남자친구랑 결혼 준비하려고 이번 주말에 한국 들어간다고. 사실 오늘 밥 먹기로 했는데, 점심약속인지 저녁약속인지를 정하질 않았더래서 오전 10시쯤 전화했더니 소근소근 '미안 내가 나중에 전화할게'하더니 그걸로 땡. 흠. 엄청나게 신기하고 반가운 인연이긴 하지만 첫 약속부터 이런 식이라니 빈정이 살짝. 잘 지내게 되면 엄청 재밌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딱히 아쉬울 것 같진 않은, 하지만 신기한 인연. 난 이제 브리즈번에 고등학교 동창까지 둔 사람이 됐다. 하하.
마지막으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는, 그 아이. 참으로 먼 길을 돌고 돌아, 마침내 우리는 커플이 됐다. 머뭇거리며 서로에 대한 감정을 이야기 하기 시작하던 바로 그 순간까지 우리는 best friend를 잃는 게 아닐까 가슴 졸여 했지만, 시간에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니 우리의 시작은 처음 만나 서로를 알아 본 바로 그 순간부터였다. '우리.. 시작 하는 데 일 년이나 걸렸는데.. 그냥 결혼 해 버리면 안 돼?'가 그 아이의 고백이였더래서, 우리는 얼결에 in literary 약혼 한 사이가 됐다 :) 이렇게 눈빛만 오가도, 손끝만 스쳐도 두근거릴만큼 가슴 뛰는 사람과의 만남이 얼마만인지. 사랑해, 우리 애기. 우리 오래오래 행복하자 :)
024. 웃으며 안녕 :: 2012/01/19 19:52
드디어 내일이면 지긋지긋한 TBS와도 굿바이다! 대체 1월 말은 언제 찾아 오는 것인가 매일매일 잠자리에 들 때 마다 때로는 괴로움에 몸서리치며 때로는 설렘에 두근거리며 손꼽아보곤 했는데, 기어이 이렇게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 끝이 보인다. 이 곳 생활이 전혀 그립지 않을 것 같다고 말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솔직한 심정으론 하루 속히 정리하고 싶은 마음 밖에 없다. 아스팔트 키드인 나에게 '한적함'은 브리즈번 시티에서 30분 떨어진 교외 캐논힐 정도가 적당한 듯 싶다. 끝도없이 지루한 이 마을에서 그나마 재미를 찾자면 맘 맞는 사람들이랑 일 벌리고 돌아다니면서 키득거리는 정도였는데, 그 짧은 4개월 반 사이에 폭풍같이 몰아친 사건사고들로 인해 사람들이고 뭐고 심신이 지쳐서 요즘엔 그냥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같이 사는 사람들이랑 티비보고 노닥거리는 게 다다.
그래도 나 간다니까 우리팀 여자애들은 벌써 눈물 글썽거려 한다. 내가 좋아했던 우리팀 girls, Diana, Ambar, Kazuyo, Kristy, Kelly, 그리고 아직까지 이름을 못 외우겠는 중국인 친구 한 명. 회사에선 나름 몰려다니는 패거리인데 다들 집이 멀기도 하고 각자 파트너들이랑 살고 있어서(위에 열거한 이름 중에 나 보다 나이가 많은 친구는 딱 한 명 뿐인데 파트너가 없는 사람 또한 딱 한 명 뿐이다! 심지어 절반은 기혼!) 밖에선 그리 자주 못 봤다. 그나마 Kazuyo는 남친 집으로 옮겨 가기 전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살았던지라 종종 놀러왔더래서 같이 극장도 가고 호주애들 득시글한 파티에 조촐히 낑겨-.-서 다니기도 하고 그랬는데. 글쎄, 사람들 사이에서 Kazuyo에 대한 평이 갈리는 데(파트너의 엑스와이프도 일본여자였는데, 이혼 정리도 안 한 채로 얘 만나서 데리고 산다. 둘이 서로 별로 미래에 대한 생각은 없이 연애만 충실히 하는 중) 난 그냥 붙임성 있는 성격에 악의없이 마냥 해맑아서 좋았다. Diana는 우리팀에서 젤 처음으로 친해진 남미 친구인데 정말이지 '모든 사람에게 다 잘 하는' 친구다. 처음 와서 어리바리 해 하는 사람들은 얘가 다 챙기고, 남들 안 하려는 일도 제일 열심히 싹싹하게 다 하고, 누구한테도 싫은 소리 못하고. 딱 전 회사 조차장님 같은 성격이랄까. 흣. 나 처음 R이랑 헤어지고 만신창이 된 상태로 출근했을 때 가장 열심히 챙겨준 아이도 이 친구라 얘 한테만 진짜 헤어지게 된 이유 털어놓고 나름 상담도 많이 받았더랬다. 친한 한국인 친구도 있고, 한류에도 관심이 많아서 한국 얘기도 은근 많이 하는데, 여기 사람들은 다 '스시'라고 알고 있는 김밥을 회사 파티때 싸간 날 물끄러미 보더니 이게 김밥인지 스시인지 차이점을 묻기도 했지. Ambar는 Diana와 마찬가지로 남미에서 온 친군데, 나이에서 묻어나는 연륜으로 늦게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팀 저팀 사람들과 고루 잘 어울리며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아이다. 나랑은 만날 나란히 일해서 항상 쉬는 시간마다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장난치면서 수다떠는데, 그런 소소한 재미를 주는 친구라 좋아한다. 첨에 봤을 땐 엄청나게 빼어난 외모도 아닌데 엄청나게 훈남 남편을 가지고 있어 비결(?)이 궁금했는데, 같이 있다보니 지적인 매력과 빠른 눈치, 상대에 대한 배려심에 유머감각, 훌륭한 요리실력까지. 이유를 알겠더라. 이 친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기네 나라에서 가져온 '여행용 물병 휴대가방'을 줬는데 아까워서 못쓰겠다. Kristy는 홍콩에서 온 아이인데, 영어를 우리처럼 외국어가 아닌 제2언어로 배운 탓인지 실력이 정말 출중하다. 물론 영어를 모어로 하는 친구들이랑 얘기해도 좋긴 하지만, 이 친구는 슬랭이라든가 비속어 없이 깔끔하고 '배운 언어'를 써서 대화하기가 정말 편하다. 뭐랄까, 같이 얘기하고 있으면 그 친구따라 나의 언어까지 다듬어져서 나오는 느낌이 든달까. 게다가 내가 홍콩에 워낙 애정이 많고 나이대도 비슷한데다 진로에 대한 고민도 비슷하게 해서 이래저래 할 얘기가 많은 친구. 여행책자로는 알 수 없었던 홍콩에 대한 많은 정보와 더불어 홍콩에 있는 자기 동생까지 소개시켜준 덕분에 앞으로 홍콩여행 갈 때 엄청 든든할 듯. Kelly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정말 그야말로 오지오지 로컬소녀. 첨에 회사 들어왔을 때 스스럼없이 와서 자기 이름이랑 자기 파트너 이름이랑 고향이랑 사는 곳이랑 어쩌구 저쩌구 마구마구 쏟아내길래 약간은 오지라퍼 내지는 정신없이 산만한 아이인가 했는데,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 들으니 어렸을 적에 약간 언어장애를 앓았다고. 특히 난독증이 심했는데, 그래서 지금도 시간이 날 때면 책을 읽는 연습을 한다고. 아닌게 아니라 쉬는시간에 보면 항상 락커룸 구석에서 조용하게 책을 읽고 있다. 읽는 책도 정서장애라든가 심리학에 대한 책이라 본인 말로는 '우울해지지만 읽으면 유익하다'고. 두 마리 고양이 기르는 게 유일한 취미이자 낙이라고 해서 가끔 고양이 사진 보여달라고 하면 엄청 신나하면서 핸드폰 앨범을 열어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국인 여자애. 이 친구는 영어를 거의 못하는 데, 그 만큼 자신감도 적어서 사람들이랑 잘 어울려 다니질 않는다. 우리 집에 놀러오라고 했더니 자기가 지도를 잘 못 읽어서 길 잃어버릴까봐 평소에 회사-집만 오가고 항상 집에 있는다고 -.-; 남편도 얘 잃어버릴까봐 어디 못하게 한단다 -.-; 그래도 나름 같은 동양애로서 가서 말도 일부러 많이 붙이고 해서 나만 보면 되게 좋아하며 와락 껴안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람들이랑 말을 잘 안 섞으니까 사람들이 이 친구 이름 불러줄 일도 드물고 해서;; 나도 이 친구 이름을 잘 모르겠다는. 흑.
이 친구들을 위해 내일 우리집에서 조촐하게 저녁파티를 열 예정인데, Kristy는 오후알바 가야하고 중국애는 또 길 잃어버릴까봐 겁먹어서;; 몇 명이나 모일 수 있을 지 모르겠네. 메뉴는 돼지갈비랑 잡채, 떡볶이 정도가 될 듯. 여기에 Kazuyo가 가라아게를 튀겨 온다고 했다! 으하핫. 이 친구들이 있어, 그래도 즐겁게 웃으며 안녕할 수 있을 것 같다 :)
023. 생활의 발견 :: 2012/01/11 19:26
1. 첨에 호주 와서 나름 '호주 사투리'라고 배운 여러가지 표현들이 있었는데, 그 중 Ta(Thanks를 한 번 더 줄인말)랑 Cheers('수고해'정도? 가게에서 물건사고 거스름돈 받으면서 쓸 수도 있고, 같이 일하는 동료나 친구랑 서로 격려하는 차원에서 쓸 수도 있고 등등)도 포함돼 있었다. 여기 생활 적응하면서 그런가보다 하고 용례(?)를 익혀가고 있었는데, 얼마 전 심심해서 SKINS 복습하다 깜놀. 뭐야 영국것들도 호주애들이랑 똑같이 사용하고 있잖아. 물론 정말 오지오지오~지 사투리도 있긴 하지만, 이런 가벼운(?) 표현들은 거의 영국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보다. 흠.
1-1. SKINS 이야기 나온 김에 하나 더. 호주 오기 전에 보고 온 드라마라 본 지 어언 1년 정도 된 거였는데, 새삼 다시보니 좋더라. 스토리며 캐릭터도 봐도봐도 질리지 않고. 무엇보다, 얘네의 일상이 그냥 익숙하게 들어와서 좋았다. 여기 애들 사는 거랑 그냥 똑같다. 쓰는 표현들도 똑같고. 첨에 이거 보고 딴 드라마 보면서 상대적으로 여긴 욕이랑 단순한 표현들만 너무 많이 나와서(주인공들이 고딩들이다보니) 학습자료-.-로 부적격이라고 생각했었는대, 지금보니 여기 애들 살면서 쓰는 딱 그 정도의 표현인거다. 글쎄, 모르겠다. 내가 공장에서만 일하다보니 고등학교 마치고 육가공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애들이랑 주로 어울려서 그런 걸 수도 있겠고(meat worker들이 대체로 거칠고 입이 험하다고, J도 그러더라. 나도 절실히 느꼈거니와). 하지만 외국인노동자인 내가 딱히 '화이트 칼라'가 되어 오피스에서 고급어휘 구사해가며 일 하게 될 일은 없을테니 -.-;; 어제 서핑하다 우연히 리조트 식음료파트에서 일하고 있는 워홀러 블로그에 들어가게 됐는데, 그 친구는 polite 표현 익히는 공부를 열심히 하더라. 그게 우리 육가공업계의 거친 언어-_-보담야 알아두면 좋을 법 싶기도. 그런거 보면서 나도 자격증 따서 서비스업 쪽으로 들어가볼까 그런 생각도 문득 했는데. 사람 상대하는게 얼마나 성가신 일인지 잘 아는 터라 또 걍 공장에 짱박히는 게 -.- 젤 이지 싶기도. 흠. 다음 일은 어느 쪽으로 구해본담.
2. 오늘 J랑 같이 쇼핑하다 파이 사 먹으면서 문득 생각 나 J에게 질문. "왜 호주애들은 파이에 콩을 추가해서 먹어?". 그니까 여기 길거리 간식 비스무리하게 빵집이나 노점 등에서 자주 식사 대용 겸 해서 사 먹는게 파이인데(미트파이. 이 또한 영국식), 얘네들은 엑스트라 토핑이라고 해서 뜨거운 콩 소스(팥죽같은 느낌의 푹 삶아 으깨서 소스넣어 걸쭉하게 끓인 뭐 그런거)를 추가해 먹곤 하는 거다. R은 항상 파이 살 때 뚜껑 따고 콩 토핑이랑 바베큐 소스 토핑을 꼭꼭 추가해서 먹어댔다. 오늘 J는 엑스트라 토핑은 아니였지만 미트+콩 파이를 사 먹었고. 그랬더니 J 막 웃으면서 한 마디 한다. "아 우린 그냥 이래야 돼. 콩 없으면 안 돼. 퀸즐랜더는 무조건 콩 추가해서 먹어". 헉. 난 이게 호주식인줄 알았는데 이건 또 퀸즐랜드 스타일이랜다. 다른 주에선 콩 추가 옵션이 없다고. 아항, 부산에서 순대 먹을 때 막장에 찍어먹는 거랑 같은 건가? 흣.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뭔가 재밌어서 혼자 빙긋 웃었다.
3. 여기 여자들이랑 친해질 때 유용한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는 요리고, 최근에 깨달은 두번째는 바로 쇼핑.
3-1. 요리는 정말이지 만국 공통으로 남녀불문하고 서로 각국의 문화를 익히고 나눈다는 점에서 공통의 대화소재가 되기에 아주 적합하다. 같은 식재료도 문화권에 따라 다른 조리법으로 먹는데, 상대가 좋아하는 요리의 아시아식 조리법을 알려주면 정말 좋아한다. 식재료로 서양스럽게 먹고 있는 거 바로 잡아주면 좋아하기도. 예를 들어 얘들은 상추로 샐러드(...)를 해 먹는데, 돼지수육 삶아다 보쌈 해 먹는거 알려줬더니 기절하더라. 우리 Steph은 불고기랑 만두를 좋아하는데, 불고기의 경우 당면사리 토핑해 먹는 걸 알려줬고 만두는 보통 튀겨먹길래 한 번은 찜통에 삶아줬더니 엄청 좋아했다. J한테는 한 번 잡채를 해 줬더니 정말 좋아하면서 레시피를 알려달라길래 조만간 한 번 보여주기로. 대신에 나는 이들에게 모두 서양식 요리법을 배웠다. 오늘 점심땐 난 J에게 김밥을 해 줬고, J는 내게 T본 스테이랑 크림치즈포테이토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엄청 쉽더라!!!!!!! 얘네 요리는 정말 아시아식에 비하면 투박하리만치 쉽다. 그냥 대충 슥슥 재료 손질해서 '오븐에 넣기만 하면 땡'인게 엄청 많다)
3-2. 그리고 쇼핑. 서로 아이템 칭찬하면서 어디서 샀는지 물어보고, 나중에 거기 가서 사 오고선 내꺼랑 비교하면서도 얘기하고, 가끔은 같이 가서 사기도 하고, 취향이 비슷하면 서로꺼 사서 선물해주면서 서로의 심미안을 칭찬해주고, 싸게 잘 샀으면 싸게 잘 샀네 이 패턴 나도 좋아하는데 비슷한 취향으로 이 브랜드 있으니 가 봐라 등등등. J는 패셔너블한 편은 아닌데, 딸들이 취향이 고급이라(ㅋㅋ) 가끔 50대 취향의 물건을 딸들한테 덥석덥석 안겨서 딸들의 원성을 사곤 한다(딱 우리 엄마 같다. 나이대도 그렇고, 울 엄마도 가끔 언니랑 나 주려고 나름 고르고 골라 선물 해 주는데 보면 우리취향과 백만광년..; 좋다고도 싫다고도 못하는거다;;). 그래서 요즘엔쇼핑이라면 환장하는 미스(...)인 나를 데려가서 여러번 체크하고 고르는데, 오늘은 손녀 드레스 고르면서 내가 딱 지목한 걸로 샀다. 히히. 그러면서 하는 말이 딸이 또 뭐라하면 나한테 책임을 물을거라며..(...) Steph은 디자이너 출신이기도 하거니와 워낙에 패셔너블해서 소품부터 의상까지 정말 뭐 하나 빠질 것 없이 취향이 남다르다. 그래서 가끔 그 안목에 맞춰 어울리겠다 싶은거 사다주면 정말 좋아한다. 이번 박싱데이 땐 내가 사 온 블라우스 패턴(영국 스타일의 따뜻한 느낌의 꽃무늬였다) 얘기하다가 둘 다 Cath kidson을 좋아한다는 걸 알게돼서 그 담부터 나름 취향 공유가 더 쉬워졌다.
4. 마지막으로. 연애는 많이 해 봐야 좋은 남자를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정말 이 사람이다 싶은 사람을, 지금 아니면 안 된다고 느껴지는 타이밍이라면, 당연히 잡아야 한다.
022. 고것 좀 일 했다고 :: 2012/01/10 20:03
길고 긴 크리스마스 홀리데이를 마치고 시작한 새해 첫 업무. 원래 지난주 복귀였는데 사측에서 일거리 없다고 더 늦추는 바람에 오늘부터 출근했다.(뭔가 웃긴게, 공식 복귀일이 있었는데 중간에 바꾸면 대체 직원들은 어떻게 알고 맞춰서 오라는 건지. 나야 회사 터줏대감 같은 우리 J랑 같이 사니까 회사 정보를 다 듣게 된다지만, 같은 팀 애들 싹 모르고 있더라. J한테 물어보니 회사에서 지역신문에 광고를 낸다고-_-;; 한국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허허..)
R이랑 사귈 때 연말이면 난 다시 브리즈번으로 돌아갈거라고(얜 따라오려고 했었다), 내가 직접 말하고 다닌 것도 아닌데 R 그리고 그의 친구들에 의해 심지어 사측에까지 다 소문나버리는 바람에, 내가 연말에 진짜 영영 가버렸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은근 많았다. 우리의 만남과 이별-_-이 워낙에 요란했으며(거듭 강조하지만 나 때문 아니고 걔 때문에!) 사람들 입방아에 엄청나게 올라댔기 때문에 헤어진 후에는 나의 사생활에 대해 가까운 팀 멤버들 외엔 잘 안 알리고 다닌 터라. 사실 R도 나 가버린 줄 알고 있었고. 오늘 아침에 car park에서 회사 입구로 걸어가다 바로 옆을 스치고 지나가는 차의 익숙한 car board를 보고 '저 자식 나 보고 식겁하겠는걸'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몇 번 마주치는데 표정이 아주 가관이더라. 걔 측근 애들도 슬금슬금 와서 친한 척 하면서 '어 너 아직 안 갔네?' 하길래 풉 했다. 나도 가고 싶다고. 근데 비자문제 해결도 덜 됐고 돈도 필요한데 나더러 뭐 어쩌라고. 하지만 이런 이야길 해 주고 싶진 않지. 그냥 웃으면서 나도 앞날을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려줬다.
오랜만에 일 하려니까 첨에 좀 어색(?)하더라. 고거 몇 주 쉬었다고, 첨에 박스 준비하려는데 코드명이 생각나지 않는거다! 잠시 망설이다가 기둥에 적혀있는 코드명표 보고 아하 하면서 버벅버벅 세팅했다. 그래도 하다보니까 또 곰방 적응되는거지. 게다가 아예 봄 까지 쭉 홀리데이 내고 푹 쉬느라 안 오는 사람들도 엄청 많아서 전반적인 체감(?) 작업속도가 어째 느슨했다. 덕분에 오랜만의 복귀 치고 별 어려움 없이 잘 적응해서 일 잘 하고 왔다. 웃긴게 내일은 또 일이 없어 휴가다! 낼 모레 다시 복귄데 이번주는 이렇게 이틀 일 하고 말 듯.
이제 슬슬 회사쪽에 퇴직 notice를 줘야 한다. 언제가 타이밍이 적당할 지 몰라 오늘 비자 서류 안 들고 갔는데, 이번주 남은 날이 낼 모레 하루밖에 없으니 늦기 전에 언능 이야기해야겠다. 요즘 들려오는 얘기론 우리회사 big boss가 곧 퇴직하며, 오늘은 우리팀 리더도 다음주를 끝으로 퇴직한단다. 그만두는 사원 애들도 꽤 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하지만 D도 그렇고 T도 그렇고 봄이 되면 바로 복귀하려는 사람들도 있으니 이래저래 물갈이가 좀 되겠다 싶네. 그치만 내가 떠나고 난 후의 일은 뭐 나 알바 아니고.. 이 얘기를 J에게 하니 속담 하나를 인용하면서(까먹었다 흑) 사람 앞날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사측에 퇴직 얘기 할 때 좋은 인상 주고 잘 마무리 하란다. 나도 이거 경험을 통해 절실히 공감한다. 공감공감.
두 개의 big cook up이 남았고(낼 모레 신년회 비슷하게 런치파티 한단다. 그거랑 우리팀 애들이랑 나 송별회 겸 저녁식사 한 번 같이 할 거 같다), 비자 서류 정리를 해야하고, 식료품을 다 소비해 없애야하고, 이사 전 쓸데없지만 버리기 아까운 것들 이베이에 올린게 나름 잘 팔리고 있어서 이 '벼룩' 마무리도 다 해야하고, 사람들이랑 예쁘게 잘 헤어질 마음의 준비를 해야한다. 후. 잘 마무리 하고, 언능 여기 생활 정리해야지.
그나저나, 사람 진짜 웃긴게. 간만에 일 했답시고 집에 들어오니까 팔다리가 너무 욱신거린다. 아니 원랜 이 일 풀타임으로 주5일씩 했는데! 약간 피곤할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로 후유증(?)이 크리라곤 미처 생각 치 못했네. 허허 거 참. 오늘은 일찍 자야겠다.
021. 이해가 안 되는 것 하나 :: 2012/01/04 11:13
사소하지만 은근 신경쓰이는 것 하나. 나 상의 여기서 6아님 8(xs or s)입는데 왜 속옷 사이즈는 10이나 12(70 or 75)가 타이트하지 -_-? 게다가 컵두 여기 애들보다 월등하게(...더블D도 수두룩 한 이 곳!) 작아서 속옷 사기가 쉽지 않다. 14부터는 어느정도 체격(...)이 있다고 분류하는 게 분명한 듯, 작은 컵은 거의 준비 돼 있지두 않다. 흥 기분 나빠. 얼마 전에 옷가게 갔다 회원카드 만드는 폼에 '혹시 샘플사이즈 체격이신가요?(size 10)' 이라고 돼 있는 거 보고 흠칫했는데. 우리나라에선 44반 55가 샘플사이즈잖우. 샘플사이즈도 나보다 큰 주제에 왜 가슴 밑 둘레는 더 작은 것이며 컵사이즈는 더 큰 것이냐! 기분나빠 기분나빠. 흥.
이상 박싱데이를 맞아 무려 10불씩에 브라를 풀던 고급 란제리숍에서 미친듯이 물건을 골랐으나 디자인이 아닌 사이즈가 있는 지가 내 선택에 중요하게 작용될 수 밖에 없음을 깨닫고 폭주한 1인. 그래서 가끔 속옷가게 구경갔다 진짜 싼 가격에 내 사이즈 나와있는 거 보면 1초도 망설이지 않고 사 모은다. 날씨가 더워서 속옷 갈아입는 주기가 짧다보니 이런게 다 중요하다. 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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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0. 크리스마스 홀리데이 단상 :: 2012/01/02 07:39
01. 열흘 가까이 되는 크리스마스 홀리데이를 맞아 브리즈번에 다녀왔다. 원랜 백팩이나 싼 단기랜트에 묵으려 했는데 잘 구해지지 않아 걱정하던 차 Steph이랑 통화하다 걍 Steph네 집에 다시 갔다. 결론적으로 정말 잘한 선택이였다는. 아무래도 다시 브리즈번 돌아오면 그 집으로 다시 들어가지 싶다. 또래 외국애들이랑 'friends'처럼 살아보고 싶은 욕심도 크지만, 우린 이제 정말 가족이 되어버렸는걸.
02. 이번 홀리데이의 하이라이트였던 마운틴 탬버린 1박2일. 할머니 할아버지의 환대속에서 쉬지않고 먹고 놀기만 했던. 예전보다 좀 더 가족들의 대화를 섬세하게 이해하고 그 대화에 참여할 수 있어 좋았다. 영화를 전공하는 손주가 좁디좁은 호주 영화산업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걱정하던 할머니와 그런 노파심을 못마땅해하던 삼촌의 말다툼,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돈을 벌어다준건 나의 예술적 창조성이지 지금 하고있는 선생질이 아니라며 나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내 아들을 그냥 믿어달라고 설득하던 Steph. 나중에야 나를 의식하곤 미안하다 했지만, 그 소란 속 가족들의 끈끈한 사랑을 느낄 수 있어 난 그냥 좀 짠하고 그러더라. 마지막엔 서로 서운했던 것들 울면서 얘기하다 한명한명 돌아가며 허그. 각자의 개성과 취향은 천차만별이지만 대화로 풀고 서로 이해하며 존중하려는 노력들이 있어서 지금껏 이렇게 따뜻한 가족모임을 해마다 이어올 수 있었겠구나 싶기도.
03. 서로를 위해 트리 맡에 놓아둔 선물들을 하나하나 끌러보는 시간. 비싸거나 요란하진 않아도 서로에게 딱 맞는 맞춤형 선물들을 챙겨주는 센스들. 서로를 잘 이해해야만 가능한 것들이라 보기만해도 좋았다. 그런데 예상치못했던 내 선물들이 하나 둘 나오는 순간, 정말 고마워서 몸둘바를 모르겠더라. 가장 좋았던 선물은 Steph의 핸드메이드 악세사리파우치. 아까워서 어떻게 들고다니려나 싶다.
04. 예전 잉햄다닐때 이렇게 저렇게 스치며 얘기 나눴던 다른 팀 언니랑 시간이 맞아 첨으로 밖에서 보게됐는데 좋더라. 여행을 많이 다닌 언니라 오픈마인드에 연륜에서 우러나는 포용력으로 내 얘기도 잘 들어주고 자기 얘기도 편하게 해주고. 이런 사람들 만나면 나도 나보다 어리고 호주생활 늦게 시작한 친구들한테 이런 모습으로 비치고 싶단 생각과 아울러 자주는 어렵더라도 오래보며 교류하고 싶단 생각이 든다. 마침 언니가 내가 알고있는 잡 정보를 궁금해하길래 기쁜 맘으로 공유하면서 뭔가 뿌듯. 언니도 잘 되고 나도 잘 되어 함께 즐겁게 잘 지낼 수 있었으면.
05. 예뻐했던(하지만 곧 한국으로 돌아가는) 애기들한테 받은 크리스마스 카드. 깨알같이 빼곡히도 적어넣은 그네들의 마음 한 구절 한 구절이 참 예뻐서 브리즈번에 머무는 내내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다. 한국에서 다시 만날 수 없다 해도 잊지 않을 인연들. 고맙다 얘들아.
06. 그리고 그 밤. 1월 1일 카운트다운을 위해 여자들끼리 몰려갔던 펍. 펍보단 좀 더 클럽에 가깝고 클럽이라 하기엔 좀 더 점잖은(?) 분위기의 곳이였는데. 우린 무려 20살 정도로 보이는 애들한테 헌팅당했다는거. 풉. 내 파트너였던 애기는 정말 핸섬앤 댄디해서 혹시나 과격한(?) 것을 원하면 그냥 점잖게 번호교환 정도만 해 볼까 했지만 애기는 그냥 딱 그 밤을 즐기러 온거였드라. 번호고 뭐고 그냥 이름만 교환했네. 킥. 잘 놀고 헤어져서 집에 왔는데 그 애기의 진한 향수냄새가 온 몸에 배어서 한 동안 몽롱했다는 건 비밀. 카운트다운 맞춰 천정에서 쏟아져내린 풍선들에서 현금을 캐(?)온건 자랑. 으하하.
07. 여기는 공항. 나 비행기 놓쳤다! 픽업해준 분이 공항 고속도로 안 타고 엄하게 돌아가서 설마설마 했는데 리밋타임인 30분 전 보다 살짝 더 늦어버려린거지. 하지만, 이미 국제선도 한 번 놓쳐본 유경험자-.-로서, 의외로 금전적 손해 없이 곰방 다음 티켓으로 바꿀 수 있단 걸 잘 알지. 별 문제없이 수수료만 좀 내고 다음 편으로 바꿨다. 가방 가득 김치(우리동네선 김치가 너무 비싸 브리즈번 간 감에 쟁여왔다 큭)가 들어있어 보안통과할때 약간 수상쩍어하는 직원의 눈초리가 있었던 것 외에는 딱히 특별할 게 없었다.
08. 아 이제 방송나온다. 보딩하러 가야지.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겁지만, 그 시간들도 금방이면 다 지나갈 걸 알기에, 이렇게나 소중한 추억들을 가득 선물받았기에, 괜찮을거야.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019. I do love myself :: 2011/12/15 17:58
호주에 정착하고 싶단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는데, 호주인 R을 만나기 시작하면서 현실적으로 심각하게 생각하게 됐다가,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게 여기게 됐다. 모국이 아닌 타국에 정착한다는 거. 얻게 될 혜택들만큼 포기해야 할 것들 역시 헤아릴 수 없게 많겠지. 그럼에도 호주에 머물고 싶다 생각하게 된건, 호주가 내게 가져다 준 나 스스로 대한 인식 변화 때문이 클게다.
그러니까 나는, 평생동안, 아니 여기 오기 전 까진 내 자신의 몸에 대해 긍정적이기 보단 다분히 부정적이였다. 전체적으로 통통한 체형에 그 정점을 찍는 하체부분은 아주 어렸을 적 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콤플렉스에 가까웠다. 그나마 최근 몇 년새 약간 긍정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했지만 가장 예쁘게 꾸미고 다녔어야 했을 대학시절이 끝날 무렵에야 스커트를 입고 다니기 시작했을 정도이니.
그랬던 내가 여기 와 처음 남자로부터 받은 찬사는 다름아닌 '다리가 정말 섹시하다' 였다. 처음 이 이야길 들었을 땐 너무 당혹스럽기 마저 해 어떤 표정을 지어 보여야 할지 고민스러웠다. '장난이지?'라고 물으면 다들 정색하고 되묻는다. '너야말로 장난이지?'. 그래서 내가 한국에서 인기있는 여자 체형에 대해 설명해주면 깜짝 놀란다. 그건 젓가락이지 매력적인 다리가 아니라며. 여기서 중요시 여기는 체형 포인트는 몸 전체의 곡선, 그 중에서도 특히 허벅지와 엉덩이다. 가슴은, 음, 없는 정도;만 아니면 괜찮다는 반응이고.
나중에 B가 그랬다. 처음에 나 봤을 때 너무 깜짝 놀랐다고. 아니 어떻게 한국에서 온 여자애 다리가 저럴 수 있나 싶어서. 그 동안 자기가 봐 온 동양여자애들은 다 젓가락 아니면 뚱뚱-_-했는데, 나는 보기 드문 미인-_-;이라고. 그 말 듣고 손발이 다 오그라들었는데, 이후 남자들한테 한명두명 대시받으면서, 걔네들이랑 얘기하면서 확실히 알게됐다. 엄마야 그 말이 정말이구나..!
그래서 지금은 한국에서라면 차마 시도도 못 할 옷차림으로 잘만 다닌다. 핫팬츠에 민소매, 미니스커트에 홀터넥 뭐 이런 식. 어느 순간부터 하의가 무릎길이면 답답하게 여겨지기 시작했다는. 아하하하.. 세상에. 내 사이즈는 여기서 8인데, 호주 사이즈는 거의 6부터 시작해서 8,10,12,14,16 이런 식으로 나간다. 그러니까 내사이즈는 S또는 XS. 한국에서 들고온 옷 중 더러 M이 섞여있는 걸 보면 뭔가 우습다. 한국에선 상의 55에 하의는 치마55 바지66를 입어야 했을만큼 허벅지로 알아주는-_- 나였는데. 그래 한국에서 난 통통했지. 한국에서 어렸을적 엄마가 나 북극곰 같아보인다고 흰옷 절대 안 사준 얘기하면 다들 뒤집어진다. 엄마가 북극곰을 못보신 거 아니냐며..
이런 대접(?)을 받고있으니 자연스레 스스로 에티튜드가 바뀌게 되었다. 단순히 예쁜옷 맘껏입어 기분이 좋아진 수준이 아니라,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 덕에 어딜가도 움츠러드는게 좀 덜해졌달까. 물론 아직 영어땜에-.- 촘 움츠러들긴 하는데..; 이 자신감 마저 없었음 영어도 훨씬 천천히 늘었을거라 거의 확신한다.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할 수 있게 해줘서, 그래서 어쩐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시작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 이 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여지껏 여기서 지내며 힘든 순간도 정말 많이 겪었음에도 현재까진 딱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단 생각이 들지는 않았던 걸 보면 아마 지금까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이런 분위기가 참 좋긴 한가부다. 무의식중에 한국에서 참 억눌려 있긴 했구나, 내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