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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 웃으며 안녕 :: 2012/01/19 19:52

드디어 내일이면 지긋지긋한 TBS와도 굿바이다! 대체 1월 말은 언제 찾아 오는 것인가 매일매일 잠자리에 들 때 마다 때로는 괴로움에 몸서리치며 때로는 설렘에 두근거리며 손꼽아보곤 했는데, 기어이 이렇게 시간은 흐르고 또 흘러 끝이 보인다. 이 곳 생활이 전혀 그립지 않을 것 같다고 말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솔직한 심정으론 하루 속히 정리하고 싶은 마음 밖에 없다. 아스팔트 키드인 나에게 '한적함'은 브리즈번 시티에서 30분 떨어진 교외 캐논힐 정도가 적당한 듯 싶다. 끝도없이 지루한 이 마을에서 그나마 재미를 찾자면 맘 맞는 사람들이랑 일 벌리고 돌아다니면서 키득거리는 정도였는데, 그 짧은 4개월 반 사이에 폭풍같이 몰아친 사건사고들로 인해 사람들이고 뭐고 심신이 지쳐서 요즘엔 그냥 집에서 뒹굴거리면서 같이 사는 사람들이랑 티비보고 노닥거리는 게 다다.

그래도 나 간다니까 우리팀 여자애들은 벌써 눈물 글썽거려 한다. 내가 좋아했던 우리팀 girls, Diana, Ambar, Kazuyo, Kristy, Kelly, 그리고 아직까지 이름을 못 외우겠는 중국인 친구 한 명. 회사에선 나름 몰려다니는 패거리인데 다들 집이 멀기도 하고 각자 파트너들이랑 살고 있어서(위에 열거한 이름 중에 나 보다 나이가 많은 친구는 딱 한 명 뿐인데 파트너가 없는 사람 또한 딱 한 명 뿐이다! 심지어 절반은 기혼!) 밖에선 그리 자주 못 봤다. 그나마 Kazuyo는 남친 집으로 옮겨 가기 전에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집에 살았던지라 종종 놀러왔더래서 같이 극장도 가고 호주애들 득시글한 파티에 조촐히 낑겨-.-서 다니기도 하고 그랬는데. 글쎄, 사람들 사이에서 Kazuyo에 대한 평이 갈리는 데(파트너의 엑스와이프도 일본여자였는데, 이혼 정리도 안 한 채로 얘 만나서 데리고 산다. 둘이 서로 별로 미래에 대한 생각은 없이 연애만 충실히 하는 중) 난 그냥 붙임성 있는 성격에 악의없이 마냥 해맑아서 좋았다. Diana는 우리팀에서 젤 처음으로 친해진 남미 친구인데 정말이지 '모든 사람에게 다 잘 하는' 친구다. 처음 와서 어리바리 해 하는 사람들은 얘가 다 챙기고, 남들 안 하려는 일도 제일 열심히 싹싹하게 다 하고, 누구한테도 싫은 소리 못하고. 딱 전 회사 조차장님 같은 성격이랄까. 흣. 나 처음 R이랑 헤어지고 만신창이 된 상태로 출근했을 때 가장 열심히 챙겨준 아이도 이 친구라 얘 한테만 진짜 헤어지게 된 이유 털어놓고 나름 상담도 많이 받았더랬다. 친한 한국인 친구도 있고, 한류에도 관심이 많아서 한국 얘기도 은근 많이 하는데, 여기 사람들은 다 '스시'라고 알고 있는 김밥을 회사 파티때 싸간 날 물끄러미 보더니 이게 김밥인지 스시인지 차이점을 묻기도 했지. Ambar는 Diana와 마찬가지로 남미에서 온 친군데, 나이에서 묻어나는 연륜으로 늦게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이팀 저팀 사람들과 고루 잘 어울리며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아이다. 나랑은 만날 나란히 일해서 항상 쉬는 시간마다 별 것 아닌 것 가지고 장난치면서 수다떠는데, 그런 소소한 재미를 주는 친구라 좋아한다. 첨에 봤을 땐 엄청나게 빼어난 외모도 아닌데 엄청나게 훈남 남편을 가지고 있어 비결(?)이 궁금했는데, 같이 있다보니 지적인 매력과 빠른 눈치, 상대에 대한 배려심에 유머감각, 훌륭한 요리실력까지. 이유를 알겠더라. 이 친구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기네 나라에서 가져온 '여행용 물병 휴대가방'을 줬는데 아까워서 못쓰겠다. Kristy는 홍콩에서 온 아이인데, 영어를 우리처럼 외국어가 아닌 제2언어로 배운 탓인지 실력이 정말 출중하다. 물론 영어를 모어로 하는 친구들이랑 얘기해도 좋긴 하지만, 이 친구는 슬랭이라든가 비속어 없이 깔끔하고 '배운 언어'를 써서 대화하기가 정말 편하다. 뭐랄까, 같이 얘기하고 있으면 그 친구따라 나의 언어까지 다듬어져서 나오는 느낌이 든달까. 게다가 내가 홍콩에 워낙 애정이 많고 나이대도 비슷한데다 진로에 대한 고민도 비슷하게 해서 이래저래 할 얘기가 많은 친구. 여행책자로는 알 수 없었던 홍콩에 대한 많은 정보와 더불어 홍콩에 있는 자기 동생까지 소개시켜준 덕분에 앞으로 홍콩여행 갈 때 엄청 든든할 듯. Kelly는 이 동네에서 나고 자란, 정말 그야말로 오지오지 로컬소녀. 첨에 회사 들어왔을 때 스스럼없이 와서 자기 이름이랑 자기 파트너 이름이랑 고향이랑 사는 곳이랑 어쩌구 저쩌구 마구마구 쏟아내길래 약간은 오지라퍼 내지는 정신없이 산만한 아이인가 했는데, 나중에 친해지고 나서 들으니 어렸을 적에 약간 언어장애를 앓았다고. 특히 난독증이 심했는데, 그래서 지금도 시간이 날 때면 책을 읽는 연습을 한다고. 아닌게 아니라 쉬는시간에 보면 항상 락커룸 구석에서 조용하게 책을 읽고 있다. 읽는 책도 정서장애라든가 심리학에 대한 책이라 본인 말로는 '우울해지지만 읽으면 유익하다'고. 두 마리 고양이 기르는 게 유일한 취미이자 낙이라고 해서 가끔 고양이 사진 보여달라고 하면 엄청 신나하면서 핸드폰 앨범을 열어보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중국인 여자애. 이 친구는 영어를 거의 못하는 데, 그 만큼 자신감도 적어서 사람들이랑 잘 어울려 다니질 않는다. 우리 집에 놀러오라고 했더니 자기가 지도를 잘 못 읽어서 길 잃어버릴까봐 평소에 회사-집만 오가고 항상 집에 있는다고 -.-; 남편도 얘 잃어버릴까봐 어디 못하게 한단다 -.-; 그래도 나름 같은 동양애로서 가서 말도 일부러 많이 붙이고 해서 나만 보면 되게 좋아하며 와락 껴안기도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사람들이랑 말을 잘 안 섞으니까 사람들이 이 친구 이름 불러줄 일도 드물고 해서;; 나도 이 친구 이름을 잘 모르겠다는. 흑.

이 친구들을 위해 내일 우리집에서 조촐하게 저녁파티를 열 예정인데, Kristy는 오후알바 가야하고 중국애는 또 길 잃어버릴까봐 겁먹어서;; 몇 명이나 모일 수 있을 지 모르겠네. 메뉴는 돼지갈비랑 잡채, 떡볶이 정도가 될 듯. 여기에 Kazuyo가 가라아게를 튀겨 온다고 했다! 으하핫. 이 친구들이 있어, 그래도 즐겁게 웃으며 안녕할 수 있을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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